[헤럴드신문] 푸를 청(靑), 청렴할 렴(廉). 짧은 두 글자는 나에게 있어 막연하게 추구할 관념에서 임용 이후 공직생활 내내 부르짖을 하나의 지표가 되었다. 두 글자 안엔 어떤 것들이 담겨 있길래 이리도 사회 전체를 관통해 메아리치는 가치가 되었을까. 역사적으로, 인간은 소수 권력에 예속된 개체들의 집합이었다. 계몽의 시기를 거쳐 인류는 권리에 눈 뜨게 되고 절대 권력을 지양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 일련의 과정은 국가의 백성들이 아닌 시민의 국가로의 역전적 주객관계의 시발점이 되어 현대 민주주의 사회의 근간을 이루게 되었다.

물론 청렴이 오늘날에서야 추구되는 가치는 아니다. 역사적으로도 사람들은 황희 정승의 청빈함을 높이 사고 칠천량 해전으로 백성들을 수렁으로 몰고 간 원균의 탐욕과 무능력함은 경계했다. 다만 시대가 변함에 따라 시의성을 갖춘 청렴함이 요구된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공직자로서의 나는 어떤 방식의 청렴을 추구해야 하는 것일까.

통계조사를 하나 인용하고 싶다. 2023년 한국은 공공청렴지수(IPI)부문에서 세계 15위, 아시아 1위를 달성하는 성과를 보였다. 코로나 시대를 겪으며 우리는 발빠른 선제적 대응과 더불어 진단 키트의 세계적 보급 등 기술과 행정의 결합을 세계에 보여주었으며 선진국의 반열에 당당히 진입할 때가 되었노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일반 시민들이 느끼기에는 이러한 발전과는 별개로 공무원들의 청렴에 대한 노력이 피부로 와닿지 않거나 심지어는 여전히 부정적 태도를 견지하는 사람들 또한 적지 않다. 뉴스를 틀면 우리는 심심치 않게 부패공무원들의 일탈행위를 목도하며 한숨을 내뱉게 되곤 한다. 무엇이 문제일까.

미디어의 발달이 부패행위의 발각빈도 자체를 올린다는 말은 핑계여야만 한다. 각 공무원 개인의 청렴에 대한 의식 함양을 넘어 청렴함을 표출할 필요성이 대두되는 것이 요즘의 경향이다. 요컨대 소극적 청렴보다는 적극적 청렴의 시대가 다가온 것 같다. 단순히 부정부패를 저지르지 않는 선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민원인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고 필요하다면 적극적으로 나서서 친절을 베푸는 미덕을 갖추는 것이 새로운 시대의 청렴으로 나아가는 첫 번째 발자국이 되리라 생각한다.

어릴 적, 하교를 하다 할머니 한 분을 봬서 인사를 드렸다. 아는 분은 아니었기에 그 분은 자기를 아냐며 뜬금없다는 반응을 보이셨다. 이내 학교에서 모르는 어른을 봬도 인사를 드리는 거라고 배웠다는 나의 말에 할머니께서는 빙삭이 웃으시며 시장바구니에서 바나나를 하나 꺼내 내 손에 쥐어주셨다. 내가 먼저 보인 작은 따스함이 민원인에게는 크게 다가갈 수 있음을, 그리고 그 따스함이 나에게로, 혹은 사회 전체로 선순환되며 넓은 바다 가득한 윤슬처럼 촘촘히 빛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